반도체發 경제성장, 서민 가계엔 ‘딴 세상’…실질소득 0.4%↑, 양극화 심화
[서울=연합뉴스] 대한민국 경제가 올 1분기 반도체 산업의 강력한 견인력에 힘입어 1.7%라는 인상적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일반 가계가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가구당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치며 사실상 정체 상태를 보였고, 소득 상위층과 하위층 간의 격차는 6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벌어져 ‘K자형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은 적자 가구의 비율은 7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 활력의 온기가 저소득층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빈약한 내수가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28일 발표한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48만1천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했다. 하지만 고물가 상황을 반영한 실질소득은 0.4%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 2025년 2분기(0.0%)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사실상 가계 구매력의 큰 개선이 없었음을 시사한다.
소득 구성별로는 근로소득이 0.3%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소득 증가 격차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사업소득은 2.6%, 연금 등 이전소득은 9.7% 증가하며 전체 소득 증가에 기여했다. 가계 총소득은 2023년 3분기 이래 11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가계 소비, 소득 증가율 추월…흑자액 2년 만에 감소
지출 측면에서는 월평균 소비지출이 310만5천 원으로 5.3% 증가하며 소득 증가율(2.4%)을 크게 앞질렀다. 이와 함께 이자 비용(6.6%)과 사회보험료(2.8%) 등 비소비성 지출도 늘면서, 가계의 흑자액은 123만9천 원으로 3.1% 감소했다. 이는 2024년 1분기(-2.6%) 이후 2년 만에 나타난 흑자액 감소세다.
소비 확대는 주로 자동차나 가구 등 내구재 구매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교통·운송 부문 지출이 12.1%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는데, 자동차 구매가 무려 29.6%나 늘어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료비도 5.3% 상승하며 가계 지출 부담을 가중시켰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자동차 구매 증가가 교통·운송 지출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으며, 지난 1~3월의 소비지출이 반영됐지만 2월 말 발생한 중동 사태의 영향은 이번 통계에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 외 오락·문화(12.0%)와 보건(10.4%) 분야 지출도 높은 증가세를 나타냈다. 보건 지출 증가는 고령화의 영향으로 외래의료서비스(12.6%)와 입원서비스(18.9%) 이용이 크게 늘어난 데 기인한다. 반면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 지출은 2.9% 줄었고, 주류·담배 지출도 2.8% 감소했다.
소득 불평등 심화…적자 가구 비율 27.4%
겉으로는 경기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만, 소득 분배 지표는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대기업의 성과급 및 명절 상여금 지급이 소득 분위 간 격차를 더욱 벌린 것으로 분석된다. 데이터처 관계자는 “대규모 사업체의 소득 증가 폭이 300인 미만 사업체에 비해 훨씬 컸다”며, “이러한 격차가 소득 상위 20%의 근로소득을 크게 끌어올린 반면, 하위 분위의 소득 증가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은 6.59배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6.32배) 대비 0.27배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분배 상황이 그만큼 나빠졌음을 의미한다. 가계동향조사 개편 이래 1분기 기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이던 2020년 1분기(6.89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비 여력에서도 계층 간 격차는 뚜렷했다.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93만8천 원으로 1.9%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소비지출은 145만7천 원으로 7.3%나 늘었다. 소득 대비 지출이 월등히 많은 구조를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은 155.3%로 전년 대비 7.7%포인트 급등하며 적자 가구의 어려움을 드러냈다. 이들의 흑자액은 -51만9천 원으로 18.5%나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964만5천 원으로 5.1% 증가했으며, 평균소비성향은 57.7%에 머물렀다. 소득에 비해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한 것이다. 5분위의 흑자액은 408만 원으로 2.6% 증가했다. 2분위(-27.0%), 3분위(-6.1%), 4분위(-4.5%)를 포함한 1~4분위 가구의 흑자액은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큰 ‘적자 가구’의 비율은 27.4%에 달했다. 이는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적자 살림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통계 개편 이후 1분기 중 최고치(2019년 1분기 31.5% 이후)를 기록했다.
이러한 분배 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소비가 늘어난 배경에는 최근 주식시장의 활황이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득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 자산 가치의 상승이 가계의 소비 여력을 키웠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전반적인 경기 흐름에 대해 “자동차 같은 내구재 구매 증가는 가계에 일정 부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지출”이라며, “가계가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지출을 확대한 결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