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 혼돈 속 유일한 ‘안정의 상징’… 총리관저 연단 설치자, 토바이어스 고프의 특별한 팬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 총리 관저의 검은 문 앞에 연설대가 세워질 때마다 영국 국민의 시선은 한 인물에게 집중된다. 이는 곧 중대한 정치적 발표의 전조이자, 동시에 ‘핫 포디엄 가이(Hot Podium Guy)’로 알려진 음향 기술자 토바이어스 고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최근 키어 스타머 노동당 총리의 사임 발표를 앞두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변함없는 존재감은 또다시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 7년간 영국 정치는 유례없는 격변기를 겪었다. 2019년 테레사 메이 총리의 퇴진 이후, 무려 다섯 명의 총리가 교체되는 동안 다우닝가 10번지 앞 연단은 수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총리의 사임, 조기 총선 발표, 혹은 중요한 대국민 담화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 연단은 대중 앞에 세워졌고, 그때마다 고프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처럼 중차대한 정치적 순간의 배경에는 늘 한 남자가 있었다. 켄트주 롱필드 출신의 42세 음향 기술자 토바이어스 고프가 그 주인공이다. 런던의 MGi 런던에서 일하는 그는 총리 관저 앞에 연단을 설치하고 마이크 음향을 점검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의 훤칠한 외모와 성실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는 ‘핫 포디엄 가이(Hot Podium Guy, HPG)’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언론의 취재 요청이 올 때마다 남편이 ‘기혼자’임을 먼저 강조한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의 인기는 상당하다.
격동의 정치 상황 속에서도 HPG 고프는 변함없이 다우닝가 10번지 앞을 지켰다. 7년 사이 다섯 명의 총리가 자리를 떠났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이들의 역사적인 순간을 준비했다. 총리 관저를 지킨 대외적인 존재로는 ‘내각부 수석 쥐잡이’라는 공식 직함을 가진 고양이 래리만이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할 뿐이다.
고프의 유명세는 2019년 테레사 메이 총리의 사임 연설을 준비하던 때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연단을 설치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의 다부진 팔 근육과 훤칠한 모습은 삽시간에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다. ‘복잡한 브렉시트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사람은 바로 이 남자’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그는 보리스 존슨의 퇴임, 리즈 트러스의 45일 초단명 총리직 사임, 리시 수낙의 취임 연설 등 모든 중요한 정치적 순간을 함께하며 역대 총리들보다 더 오래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의 모습이 포착될 때마다 영국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열광했고, 그가 연단을 운반하거나 마이크를 점검하는 사진과 영상은 ‘곧 중대한 정치적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호가 되었다.
고프가 다우닝가 10번지에 나타날 때마다 소셜미디어는 ‘다우닝가에서 유일하게 지지율이 상승하는 인물’, ‘역대 총리들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는 존재’, ‘경제적 혼란 속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이’와 같은 재치 있는 댓글로 가득 찬다. 심지어 그가 총리처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듯한 합성 영상(밈)까지 제작되어 유포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케이티 글라스는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녀는 HPG에 대한 오랜 사랑이 ‘올바른 인물’만 등장한다면 영국인이 결코 변덕스럽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평하며, 그를 ‘영국 정치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인물’로 지목했다. 글라스는 “HPG는 오늘날 영국 정치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존재”라며, 그의 존재 자체가 혼란스러운 시기 속에서 영국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차례 그가 리시 수낙 총리의 퇴임 연설 준비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자, 소셜미디어는 ‘공황 상태’에 빠졌을 정도였다. 그의 굳건한 팔과 온화한 표정은 어떠한 정치적 갈등도 초월하여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듯 보였다는 평이다.
하지만 정작 고프 본인은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과거 자신의 외모에 대한 찬사에 “조명 덕분”이라거나 “햇빛 각도가 좋았던 것 같다”고 답했으며, “나는 그저 총리 사임 연설에 앞서 모든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뿐”이라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함을 밝혔다.
‘더 타임스’는 HPG의 등장이 총리들에게는 ‘종말의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역설한다. 장비가 설치되는 순간, 모든 총리는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직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사임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자신의 재임 기간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회고했지만, 많은 영국인은 그의 연설이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HPG의 노고 덕분이라며 아이러니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단순한 음향 기술자에게 쏟아지는 이러한 뜨거운 관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케이티 글라스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심각해지려 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며 “심각한 일 속에서도 코미디를 찾아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총리 교체가 이루어진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핫 포디엄 가이’ 현상은 영국인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바보 같으면서도 매력적인 기분 전환’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영국인 특유의 기질이 바로 HPG 현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