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품목 앞세운 한국 비IT 수출, 독일·일본 추월…중국 맹추격 속 경쟁 심화 예고
[서울] 정보기술(IT) 분야를 제외한 한국의 수출 부문이 중국의 강력한 추격과 미국의 관세 장벽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이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수출액의 큰 변동이 없는 가운데서도, 조선, 방위산업, 수송장비 등 고부가가치 품목들이 시장에서 견고한 위치를 확보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무역팀이 발표한 ‘비 정보기술(IT) 수출의 주요국 간 경쟁 상황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비IT 중화학공업 제품군 세계 시장 점유율은 4.0%로, 2019년 3.9%에서 소폭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11.0%에서 14.6%로 3.6%포인트 급증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독일은 12.4%에서 11.1%로, 일본은 6.9%에서 5.6%로 각각 1.3%포인트씩 하락했다. 2023년 이후 비IT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주요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에 비해 시장 충격을 덜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행은 이번 분석을 위해 관세청의 성질별 분류 기준에 따라 전기·전자제품을 제외한 화공품, 철강, 기계류, 수송장비, 기타 부문의 HS 6자리 코드 2311개 품목을 면밀히 살폈다. 이 결과, 업종 전체로는 부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품목별로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범용품 간의 실적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은 철강 및 기계류 분야에서 점유율이 미미하게 감소했지만, 수송장비와 기타 부문에서는 오히려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수출 품목의 질적 고도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제품복잡성지수(PCI) 기준으로 고기술 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이 연평균 6.8%를 기록하며, 세계 평균(6.0%), 독일(5.2%), 일본(2.3%)을 모두 앞섰다. 다만 중국(11.8%)의 성장세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부 품목에서도 한국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수송장비 분야에서는 화물선, 디젤전기기관차, 전동 철도차량, 대형 승용차, 그리고 부유식·잠수식 시추 및 생산 플랫폼 등 고기술 선박·차량 품목들이 점유율 상승을 견인했다. 기계류에서는 차량용 엔진, 선박용 디젤엔진, 핵연료 요소, 대형 건조기 등이 선전했다. 기타 부문에서는 포병무기, 로켓발사기, 장갑차 등 방위산업 품목과 치과용 X-ray, 치과용 보철물 등 첨단 의료기기가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이는 가격 경쟁보다 성능, 납기, 인증 등 비가격적 요소가 중요한 영역에서 한국이 독일과 일본의 틈새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관세 부과 충격 속에서도 한국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2025년 2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한국의 관세 대상 비IT 품목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8% 감소했으나, 미국 수입 시장 내 점유율 하락폭은 0.4%포인트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은 1.9%포인트, 일본은 2.1%포인트, 독일은 2.2%포인트 하락하며 한국보다 큰 영향을 받았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고관세 정책으로 인해 한국 제품이 일부 대체재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세안과 멕시코의 점유율 상승폭이 더욱 커, 한국을 공급망 재편의 최대 수혜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제시됐다.
앞으로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중국은 저가 범용품을 넘어 고기술 품목까지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독일과 일본이 오랫동안 지켜온 고부가가치 제조업 시장에서 한국, 중국, 아세안, 멕시코 등 다수의 국가들이 동시에 경쟁하는 구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주요국 간 기술 수준이 점차 상향 평준화되면서 글로벌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향후 비IT 수출은 범용품의 가격 경쟁보다는 고부가가치 품목의 기술 및 품질 경쟁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며, 이로 인해 양적 성장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한국 수출 전략이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품질 향상에 집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