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IT 사업장의 그림자: 치솟는 하드웨어 비용,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떠안는 현실
공공 정보기술(IT) 프로젝트 현장에서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이 심각한 재정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하드웨어(HW) 부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고정된 사업 예산 안에서 해당 증가분을 충당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공급가를 대폭 삭감하려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폭증으로 인한 메모리 가격 상승이 하드웨어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공 IT 사업을 수주한 주사업자들이 “하드웨어 비용이 올랐으니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요구를 빈번하게 해오고 있습니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사 ‘알파 솔루션즈'(가칭)는 최근 공공 IT 프로젝트를 수주한 대기업으로부터 소프트웨어 가격을 기존 계약의 절반 이하로 낮춰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드웨어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손실을 소프트웨어 단가 인하로 메우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알파 솔루션즈는 결국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파 솔루션즈의 대표는 “사업 수주 단계부터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경쟁사 제품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토로하며, “이미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는 고객사에서도 ‘윈백'(경쟁사 제품으로 교체) 위험 때문에 마진이 없거나 심지어 적자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실상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공공 IT 사업에서 발생한 하드웨어 가격 인상분을 떠맡는 ‘완충재’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인 ‘베타 시스템즈'(가칭)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베타 시스템즈의 대표는 “주요 사업자들의 소프트웨어 단가 인하 압박은 늘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하드웨어 가격 급등 부담을 상쇄하려는 시도가 더욱 노골적이고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심화하고 있으며, 업계 내에서 관련 사례들을 공유하며 공론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공사업의 경직된 예산 편성 시스템에 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의 예산은 통상 사업이 시작되기 전 해 하반기에 확정됩니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에 100억 원 규모로 책정된 프로젝트에서 하드웨어 비중이 20억 원이었다면,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및 환율 변동 등의 영향으로 해당 장비의 실제 구매 가격이 4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치솟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ITSA)의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서버 장비인 x86 서버 가격은 1년 만에 약 3.5배 상승하는 등 전반적인 하드웨어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사업의 특성상 한번 확정된 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주사업자들은 하드웨어 비용 증가분을 ‘조정 가능한’ 항목, 즉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비용이나 개발 인건비에서 삭감하여 메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용 전가는 특히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해외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단가 협상 자체를 거부할 수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형 사업자나 발주처의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MSIT)의 신속한 대응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하드웨어 가격 상승에 따른 공공 IT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결국 소프트웨어 산업까지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비판하며, “근본적인 원인이 하드웨어 가격 급등과 경직된 입찰 제도에 있는 만큼, 정부의 선제적이고 단호한 대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행 예산 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급격한 물가 인상이나 환율 변동과 같은 외부 요인이 발생했을 때,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을 통해 사업비를 유연하게 증액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아울러 공정한 계약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옵니다.
김숙경 KAIST 교수는 “사업자 간 불합리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표준 계약서 도입을 권고해 왔지만, 강제성이 없어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중 계약이나 무리한 가격 인하 압박이 만연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서 “정부는 표준 계약서의 성실한 이행과 상생 협력을 실천하는 기업에 대한 평가 가점 대폭 확대 등, 실질적인 유인책과 규제 장치를 강화하여 건전한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